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필체2

7년의 밤 _ 정유정 7년의 밤 기억보다 상상이 더 분명한 장면을 보여줬다. 술꾼에게 '어디서, 왜 마셨느냐'고 묻는 건, 공동묘지에 가서 당신들은 왜 죽었느냐고 묻는 것과 같다. '만약'이 불러 온 건 후회뿐이었다. 보지 않았다면 좋았을 일이었다. 보지 않은 일은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다. '좋다, 싫다'를 드러내지 않는 답이었다. 몸에 밴 듯한 언어습관이었다. 밥 정도야 알아서 차려 먹겠지. 코딱지나 파라고 손가락이 열개씩 달린 건 아니니까. "책 말고 돈을 보여 달래요." 위안도 보탬도 되지 않는 우김질이었다. 직감과 논리가 일제히 한 방향을 지시하고 있는데, 정답을 찾지 못한 질문들은 박쥐 떼처럼 머릿속을 날았다. 전자는 싫고 후자는 불가능했다. 2020. 12. 27.
지금 이 순간 _ 기욤 뮈소 지금 이 순간 _ 기욤 뮈소 눈꺼풀이 마치 박음질이라도 해놓은 듯 닫혀 열리지 않는다. 눈꺼풀은 스테이플러로 박아놓은 듯 달라붙어 떠어질 줄 모른다. 눈꺼풀이 무거운 납덩이를 얹어놓은 듯 퉁퉁 부어오른 느낌이 든다. 눈꺼풀이 자석처럼 딱 달라붙어 있다. 눈두덩이 퉁퉁 부어있다. 눈꺼풀을 들어 올리기가 매우 힘들다. 아버지는 분명 나에게 아무도 믿어서는 안 된다고 말해주었고, 그 말이 결코 틀리지 않는다는 걸 인정한다. 묘지에 묻힌 빌어먹을 영감탱이보다는 늘 내가 더 똑똑하다고 자부해온 나는 금단의 문을 열고 들어섰다가 큰 낭패를 당했다. 화가 치밀어 내뱉은 그 말은 그저 내 자신을 위로하기 위한 말이었다. 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-.. 2020. 12. 24.